아들맘, 화이팅!

스토리텔링, 이야기의 무시무시한 힘!

키가한뼘더 2018. 3. 10. 00:33

보통 수업을 하면 꼭 미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과 칼싸움을 하기도 하고 좀비 놀이를 하면서 적당히 에너지를 풀기도 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는 칼싸움 입니다.

많은 어머님들은 아들이 폭력적으로 오해하는 것 중 하나인데요, 개인적으로는 가장 효과적인 대화수단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그냥 싸우기 보다 영화와 같은 상황설정, 즉 스토리텔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전쟁, 좀비, 외계인 침략, 바이러스 등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뛰어다닙니다. 굳이 선생님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즉각적으로 이야기를 만듭니다. 누가 시작할 필요도 없이 다같이 이야기 속으로 풍덩 들어갑니다.


이야기에 취해서 노는 아이들을 가끔 관찰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모두 이야기에 둘러쌓여 있구나’





칼을 들고 신나게 싸우는 아이에게서 그 아이의 주변에 감돌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해 집니다. 자신이 용감한 전사로서 괴물을 물리친다고 생각할까요?^^





흔히 어른들 세계에서 무언가를 푹 빠진 사람들을 보고 매니아 또는 오타쿠라는 단어를 씁니다. 만화캐릭터 피규어를 모으는 사람, 특정 연예인의 앨범과 사진집을 사는 사람.. 모두 다른 사람보다 강력한 이야기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사람도 있죠. 누가 말려도 끝까지 자신의 길을 고집하는 사람. 전 일생을 연구에 헌신하는 사람, 종교에 헌신하는 사람, 전 재산을 투자해 사업을 하는 사람.. 모두들 각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너무나 강력한 나머지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즉 이야기 속에 푹 빠져 있습니다.


조금 강력한 예를 들면 도박이 있습니다. 일확천금의 꿈,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검소하게 살면서 갑작스레 초심자의 행운으로 약간의 목돈을 얻게 되자 전재산을 투자했다가 탕진하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패턴이지요. 전 재산을 잃고 나서 보통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정말 귀신에 씌었었나봐...”


이 때의 귀신은 바로 그 사람을 감싸던 강력한 이야기였겠죠. 돈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극단적인 희망이야기에 빠진 것입니다.


또 가끔씩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에 관한 것에도 이야기의 강력한 힘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야기가 신념과 만나는 순간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흔히 해외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자살폭탄테러는 자신의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강력한 이야기에 빠진 경우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는 굉장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야기, 스토리텔링이 없다면 지금의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최근에 역사서를 새로 써야 한다고 한동안 시끌했던 ‘괴베클리 테페’라는 유적이 있습니다. 



터키 남동쪽 샨르우르파 지방에서 발견된 유적입니다. 고고학자들의 발견에 따르면 신전으로 사용된 흔적이 대규모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알려진 5대 문명보다 7000년 정도 앞선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종교는 커녕 수렵과 채집을 통해 살던 문명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이 시대에도 고대인들은 종교를 가지고, 즉 그들만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만큼 이야기는 인류와 함께 했고 인류의 진화와 함께 더 정교해지고 강력해 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사람을 움직이게 합니다.

고대시대부터 사람을 움직여 하나로 모으고 도시를 건설하게 했습니다.

제 교실에서는 심심할 법도 한 수업을 한순간에 전쟁터로, 도심 속 좀비 도시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신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합니다.

너무 과도한 이야기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이야기는 우리에게 삶의 원동력을 주고 사람들과 풍성한 관계를 맺게 해줍니다. 무엇보다 세상을 좀 더 살만하고 희망을 갖고 살게 해줍니다.


반대로 이야기는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잘못된 신념으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기도 하고 평생을 남들에게 상처를 주며 살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야기에 빠져 노는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의 강력한 힘을 종종 느끼곤 합니다.


신나게 점프하고, 칼질하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그 안에 꿈틀대는 생명의 에너지, 그 이야기의 힘을 조금이나마 제 삶에 옮겨 오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좀비놀이를 하며 신나게 두들겨 맞고(?) 수업을 하는지도 모릅니다^^